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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반성·책임·다짐이 없는 금융당국

오피니언 기자수첩

[정백현의 직격]반성·책임·다짐이 없는 금융당국

등록 2021.02.26 10:11

정백현

  기자

반성·책임·다짐이 없는 금융당국 기사의 사진

PC 게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포트리스’,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기자는 고등학생이었다. PC방에서 즐기던 그 게임들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기자는 친구들과 함께 수업 시간에 학교 담장을 넘었다. 그러던 중 담장 일부가 무너졌고 담장 옆에 세워져 있던 트럭 화물칸에 벽돌이 쏟아지고 말았다.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차도 망가지지 않았으며 마침 이 광경을 본 차주 아저씨도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허허 웃어넘기셨다. 그런데 하필이면 벽돌이 쏟아지던 순간 소리가 매우 크게 난 탓에 주변에서 이 소리를 들으신 선생님께 결국 잡혔다. 무너진 담장 앞에서 야구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맞고 반성문을 쓴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담장 붕괴에 대한 학교 측 책임은 없었다. 그 터에서만 60년 이상 자리잡은 학교였기에 담장은 어림잡아 축조한 지 몇십년은 돼 보였다. 그런데 그에 대한 관리 책임은 쉬쉬하고 학생의 잘못만 물은 셈이다. 물론 정규 수업 시간에 담치기를 시도했던 기자의 잘못이 제일 크기는 하다.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성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듣는 게 옳다.

금융당국 안팎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회사의 잘못으로 금융 소비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금융사고에 대한 제재가 진행 중이지만 상품의 판매와 관리를 전적으로 감독해야 할 감독당국은 감독 부실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현재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고에 대해 펀드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 행위에 대한 제재를 심의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신한금융지주, 신한은행, 우리은행에 대한 제재를 논의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펀드 부실 우려를 알고 있으면서도 소비자들에게 펀드를 판매한 은행에 대한 제재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금융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처벌인 셈이다.

그러나 펀드가 불법적으로 부실하게 설계·운용됐는지, 펀드를 통해 금융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우려는 없는지, 사후 제재 수준이 적절한지 꼼꼼히 따져봤어야 하는 금융당국의 임무 태만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제재 대상이 된 은행들은 “금융 소비자 손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라면서도 “왜 금융회사만 벌을 받는가”라는 의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당국이 펀드 판매 관리를 꼼꼼히 하고 사전에 은행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면 일이 더 커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은행들의 호소다.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은행장이나 고위 임원이 징계 대상이 돼야 한다면 금융감독원장이나 금융위원장도 대국민 사과나 반성의 메시지를 당연히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왜 금융당국은 매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가”

한 은행 고위 관계자의 푸념이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관리 소홀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언급된 바 있고 현재 감사원에서도 금융감독원 등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금융당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다. 올바른 규제를 잘 만들고 관리해서 금융회사가 소비자들에게 금융 상품을 판매할 때 어떠한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사전과 사후에 꼼꼼히 감독해야 하는 일이 금융당국의 의무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금융 소비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를 구하고 통렬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를 다짐해야 한다. 그 반성은 늦더라도 꼭 해야 한다. “이쯤 하면 다들 잊었겠지”라면서 묵인하는 순간 또 다른 부실 감독의 싹이 트일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혹시나 이와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상품 판매사와 수탁사에만 책임을 묻지 말고 당국도 “저희가 제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일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서두의 학교 담장 이야기에 사족을 더해보겠다. 기자의 모교는 나중에서야 담장 붕괴 재발 방지책을 세웠다. 무너졌던 벽돌 담장은 임시 보수 과정을 거쳤다가 기자가 졸업한 후 아예 헐렸다. 그 자리에 새로운 철제 담장이 세워지더니 폐쇄회로 TV(CCTV)가 생겼다.

학교를 떠난 뒤였기에 그 뒤로 몇 명의 학생이 담장을 넘었는지, 담치기 때문에 체벌을 받은 학생들이 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튼튼한 새로운 담장도 생겼고 CCTV로 학생들을 확실히 관리하겠다는 나름의 방침도 세웠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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