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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➅달관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 승화(昇華) ➅달관

등록 2019.08.05 14:48

 승화(昇華) ➅달관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여섯 번째 글의 주제는 달관(達觀)이다.

달관(達觀); 국민영웅 군견 달관이가 국민에게 던진 질문은

요즘 나는 온통 ‘달관이’ 생각뿐이다. 달관이는 실종된 조은누리를 발견하여 실의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에서 감동과 희망을 준 군견 셰퍼드다. 개는 인간의 가장 충실한 친구로 야만적인 인간을 문명적인 인간으로 견인하였다. 기원전 4만년경,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빙하로 덮힌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같은 유인원들과 경쟁하고 있었다. 동물과 유사한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 문화적인 인간 문명을 구가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도움 준 은인이 있다. 바로 회색 늑대였다가 인류와 동고동락을 시작한 사육된 늑대, 즉 개였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에서 발견된 쇼베동굴 벽화는 인류는 더 이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존재의 의미로 여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자비, 정의, 배려와 같은 가치를 존재 의미로 삼아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남긴 최초의 벽화들이 존재한다. 쇼베 동굴에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밝혀주는 중요한 발자국이 있다.

여덟 살에서 열 살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맨발자국과 늑대 혹은 큰 개로 추정되는 동물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늑대가 인간에 의해 사육되면서 개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약 1만 년 전 중국과 중동 지방에 인간이 기르는 최초의 개가 등장했다고 추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 이 발자국들은 그것보다 훨씬 전인 2만 8000년으로 추정된다.

쇼베 동굴에 남겨진 동물의 발자국은 야생 늑대도 개도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제 막 사육을 시작한 단계이므로 이 동물을 편의상 ‘늑대-개’로 부르기로 하자. 이 늑대-개는 인간이 주는 먹이로 다른 야생동물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인간은 늑대-개가 그를 지켜주어, 밤에 편히 잘 수 있었다. 인류가 아마도 저녁에 편히 자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이때였다.

인류는 늑대-개와 협동하면서 사냥의 최강자가 되었고,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심지어는 안 보이는 세계, 사후세계를 상상하여 발명하였다. 나는 은누리를 발견한 달관이를 보고 쇼베동굴의 늑대-개가 생각났다. 나는 잠시 달관이가 되어 조은누리양을 구출한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다음은 그 상상력의 내용이다.

나는 2012년 12월, 셰퍼드로 태어났다. 온몸이 검은 색이란 사실을 최근에 거울보고 알았다. 2014년 2월 말, 추운 겨울에 군인들이 나를 찾아와 군용트럭에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가고 있었다. 나는 철망달린 트럭 뒤 칸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들이 나를 식용견으로 여겨 무시무시한 장소로 팔러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소문으로 인간들이 동료들을 잡어 먹는다는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대한민국은 지상에서 유일하게 개(식용) 농장이 있는 국가다.

겉으론 문명국가인 척하지만, 대한민국은 개고기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식용견을 키우는 견사를 보면 비위생적이기 짝이 없다. 우리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까다롭게 어디서 어떻게 도축되었는지, 위생검증을 받았는지 따진다. 적어도 위생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식용견은 국가의 관리를 벗어나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도축 했는지 알지 못한다. 식용견을 먹는 행위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위해危害행위다.)

나는 튼튼한 치아로 철망을 끊고 달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려 근처 산으로 도망쳤다. 후에 내가 탈출한 곳이 중앙고속도로 어디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눈 덮인 근처 야산에서 하루를 보냈다. 한 밤 중 공포는 무시무시했다. 춥고 배고프고 가끔 다른 야생동물들이나 유기견들의 발자국 소리는 내 존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야산은 험한 곳이다. 그곳엔 인간들이 수없이 설치한 가혹한 덫이나 올무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조만간 그들이 유인한 미끼에 끌려 꼼짝없이 잡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야산에서 비참하게 홀로 죽어가거나, 혹은 새벽마다 트럭을 몰고 유기견을 찾아다니는 ‘개장수’에게 잡혀 인간들의 밥상위에 올려 질 것이다.

나는 후회했다. 그 선량하게 생긴 군인들을 믿지 못해 도망친 내 자신이 미웠다. 그 다음 날 아침, 산 저 밑에서 어제 나를 찾아 온 군인의 체취가 내 코로 슬며시 들어왔다. 나는 집중하면 바람을 타고 오는 800미터 반경 동물의 냄새를 모두 구분해 낼 수 있다. 그 군인의 목소리도 점점 가까이 들렸다. 어제 만난 그 군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할 남은 생을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그 군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 군인은 가출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간 곳은 육군 제1군견교육대다. 이곳은 많은 개들이 들어와 군대에 필요한 탐지-수색견으로 훈련받는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에 네 시간씩 훈련을 받았다. 매일 매일 일정한 음식과 운동으로 나는 군견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 교육대에는 매년 200마리 정도의 군견 후보들이 태어나고 입소하지만, 군견으로 발탁되어 실제 군대에 배치되는 개들은 극히 일부다. 이곳에서 태어난 유견들은 탐색견이 되기 위한 시험인 물품 소유욕과 사회성들을 심사받는다. 그러나 탈락되면 안락사 처리되었다. 나는 어제까지 같이 놀던 친구들이 부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의 도움으로 인간이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나는 그런 헛된 죽음을 부당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참가하였다. 훈련사 핸들러들의 요구를 금방 간파하고 완벽하게 완수하였다. 그들은 나를 ‘달관達觀이’라고 불렀다. 나는 핸들러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 버렸다. 그들이 보상 음식을 주기 때문에,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최선인 후각을 발전시켜 훌륭한 군견이 될 것이다. 나는 훈련을 마치고 운이 좋게 극히 일부만 선택된다는 군견으로 발탁되었다. 나 때문에 선택받지 못해 탈락되어 헛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친구들을 위해, 나는 군견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다.

내가 배치된 곳은 32사단 기동대대다. 나는 이곳에 배치된 지 6년이 넘는 최고참이다, 며칠 전(2019년 8월 2일) 한 중요한 임무가 떨어졌다. 지난 7월 23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가족들과 등산하던 조은누리양이 실종되어 10일이나 지났다는 것이다. 군인들이 5700명이나 투입되어 근처 산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은누리를 찾지 못했다. 내가 야산에서 혼자 지낸 경험을 상상하면, 은누리는 어린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건장한 성인도 이 더운 날씨에 홀로 야산에서 3일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쭉 흘렀다. 은누리는 5년 전 추운 겨울 야산에서 숨어있던 나였다. 그녀가 어떻게 홀로 열흘 동안 버티고 있을까? 그녀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희미하지만, 나는 은누리를 찾고 싶었다.

우리는 한조가 되어 은누리가 길을 잃은 최초의 지점에서 수색을 시작하였다. 32사단 기동대대 박상진(44) 원사, 매일 동고동락하며 나를 훈련시켜주었던 김재현 일병, 그리고 내가 한조다. 우리는 태양이 중천에 떠올라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대낮에 수색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은누리와의 연락이 끊어진 최초지점인 충북 청주지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에서 코를 쫑긋 세웠다. 내 조상은 원래 북극과 같은 추운 지방에서 살던 회색 늑대였다. 우리는 추운지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몸을 털로 무장하여 겨울을 나곤했다. 온몸에 털은 진화를 통해, 생존을 위한 최고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더운 날씨에 우리의 털은 인간이 겨울에 입는 모피코트와 같다. 나는 이 모피코트를 입어 땀으로 열을 발산하지 못해 혀를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며 은누리의 옷에서 맡은 체취를 기억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은누리의 체취가 나는 쪽은 마을 쪽이 아니라 오히려 등산해야하는 가파른 산쪽 이었다. 나와 김 일병이 앞서고 박 원사가 뒤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산에 남아 있는 은누리의 체취를 따라 거의 700m나 등산하였다. 동물은 체내온도가 3도 이상 올라가면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너무 지쳐 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마다 김 일병과 박 원사가 나에게 물을 주며 격려하였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은누리의 체취를 더욱 강하게 맡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은누리를 발견하였다. 오후 2시40분이였다. 나는 온몸이 낙엽으로 덮였지만 은누리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고 그녀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래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보고동작’報告動作 자세를 취했다.

보고동작이란 찾던 대상을 발견했을 때, 내가 취하는 행동으로 앉는 자세다. 앉는 자세는 엉덩이와 뒷발을 땅에 붙이고 앞발은 곧게 뻗은 후, 그 대상을 가만히 보는 행위다. 보고동작이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했을 때, 내 자신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다. 보고동작에는 말이 없다. 나는 은누리를 찾았다고 멍멍 짖지 않는다. 나는 침묵沈默했다. 김 일병은 나의 동작을 보고, 은누리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낙엽이 은누리의 온몸을 가린 상태다. 자연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거의 데려갈 찰나였다. 김 일병은 박 원사에게 알렸다. 박 원사는 달려가 은누리를 확인하고 물었다. “누리야! 누리야!” 은누리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모아 입을 겨우 열어 말했다. “네.” 이제 박 원사는 은누리를 덮은 낙엽을 걷어내고 물을 조금씩 먹였다. 이들은 이제 700m가 넘은 가파른 산을 내려와야 한다. 나는 이들이 걸어 내려가야 할 길을 터주고, 박 원사와 김 일병은 은누리를 번가라 가면서 업고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잃었던 은누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에게 오늘 하루를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은누리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쉰들러스 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생명을 구해준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에 적힌 인용구가 생각났다. <탈무드> 미쉬나 산헤드린 4.5에 등장하는 문구다.

유대인들이 오스카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유대인들이 오스카 쉰들러에게 선물한 반지

“한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다.”

은누리를 구출한 사실이 알려져, 기자들이 몰려왔다. 수십명이 카메라를 들고 나를 사진 찍는다. 나는 저 멀리 산을 바라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당신 인간들은 누구 한명을 구해본적 있습니까?”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공부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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